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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4일

이번 선정 도서는 "호밀밭의 파수꾼" 입니다.



"같이 있는 사람은 없어. 나와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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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홀든 지수는 몇 점인가요?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홀든 콜필드가 있다.


겉으로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지만 동시에 속으로는 '으, 꼰대.'하고 마는 반항적인 자아. 나는 그것을 홀든 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면의 홀든 없이 살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깜깜한 감옥과 다름없다. 이 책이 쓰인 1950 년대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유했던 부흥과 순응의 시대였다고 한다. 정치적 보수주의가 난무했고 사랑 이 넘치는 전형적인 '가정'의 형태가 중시됐다. 겉으로 보기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행복이나 부유함이 특정 조건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다름이나 다양성 같은 것은 이단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호밀밭의 파 수꾼>이 재즈, 술, 마약 등 향락에 빠졌던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에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염원을 담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나는 홀든이 겪은 감정의 동요가 청춘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면, 성인이 되면, 직장인이 되면, 그리고 부모가 되면,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성숙한 자아가 지게 되는 책임감의 무게 는 갈수록 무거워진다. 역할에 따른 책임. 홀든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채 어른이 되기 위하여 자신 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중이다. 모든 것이 싫고 나와 맞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한 불만들을 속으 로 삭힐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서러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공허함을 잃지 못하는 홀든이 안쓰럽다.


부분 발췌: 송사원 (2020.04.26), 호밀밭의 파수꾼: 좋은 어른의 지침서, 원본링크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요즘은 사춘기뿐만 아니라 삼춘기니 오춘기니 하는 말까지도 쓰는 걸 보면, 성장통

이라는 것이 나이보다는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과 더 밀접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기성이라는 말보다는 미생이라는 말에 더 위로받는다. 조금은 흔들려도 그것이 완생을 향하는 과정 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세대는 되고 싶지 않은, 미생이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갖는 소망이 아닐까 싶다.


부분 발췌: 헤아리다 (2023.11.17), 호밀밭의 파수꾼: 동심과 기성의 경계에서 겪는 성장통, 원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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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원제: The Catcher in the Rye

Novel by J. D. Sal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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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날짜: 6/10/2024 (월)

모임시간: 8:00 - 10:00PM EST

모임장소: Zoom Meeting


+ 참석을 원하는 분들은 오픈톡에서 RSVP를 부탁드립니다.


+ 온라인모임입니다. 당일 오전에 카카오톡을 통해 개인별로 초대장이 발송되니, 운영자 "재호"와 1:1 대화기록이 없는 분들은, DMV북클럽 오픈챗방에서 아이디 "재호"를 찾아 1:1 Open Chat 줌 링크를 요청해주세요.


+ 자유롭게 대화하는 편안한 형태의 모임입니다. 반대와 찬성을 가르는 논제식 토론이 아니라 소감과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열린분들과 책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부담없이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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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둘러싼 오해


 주변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치 좋은 친구를 만난 듯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주제를 함께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일은 기쁜 일이다. 특히 그 주제가 책이 된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대화 소재는 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주제로 한 대화는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또래 친구들은 의식의 흐름을 방불케 하는 문체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하였고,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은 책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린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중략)…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멋진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를 상상해내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 한다.” - 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호밀밭의 파수꾼』도 홀든 콜필드의 입을 빌려 속물적인 세상을 비판한다. 콜필드에게 자동차의 연비, 가식적인 인사말, 할리우드 영화 같은 허례허식들은 견디기 힘든 것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와 『어린왕자』는 모두 똑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교보문고의 전광판 문구로 채택된 것에 비해서, 『어린왕자』가 성인을 위한 동화책으로 불리는 데에 비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어른들의 대우는 비참하다. 그 이유는 아마 『호밀밭의 파수꾼』 이 16살의 관점에서 기성 어른들을 감화시키고 설득하려 하기보다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많은 학부모가 자식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일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고 술과 담배를 하며 세상에 반항적인 문제아에 아이들이 매혹당하지 않을까 어른들은 염려했다. 많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금서로 지정되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표면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비속어와 신성모독에 감추어진 콜필드는 그 무엇보다도 순수를 지키려 했던 아이였다. 콜필드는 여동생의 학교 벽면에 쓰여진 외설적인 욕을 보고 분노한다. 동생처럼 어린아이들이 욕설을 보고 그 뜻을 알게 될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콜필드는 그 욕설을 지우지만 나중에 가서는 칼로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욕설을 보게 된다. 칼로 쓰인 욕설은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콜필드의 노력을 무용으로 만들어 버린다. 콜필드는 지울 수 없는 낙서, 즉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고 순응해야 하는 사회가 있음을 알고 있다.


부분 발췌: 대서 (2020.07.15), 나를 키운 성장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원본링크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 줄 수 있게 될 지도 몰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들에게서 배웠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너한테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거야.이건 정말 아름다운 상호간의 원조인 셈이지. 이건 교육이 아니야. 역사이며 시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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