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 소설입니다. 30세를 앞둔 주인공이 20대 초반에 겪었던 지극히 평범한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갖가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또 그들을 잃습니다. 그들은 예고 없이 “나”에게 다가와 인연을 시작하게끔 만들고, 다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여타 다른 심리묘사가 철저한 소설들처럼 타인의 동기를 명확히 이해하는 경우는 실제 우리의 인생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수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을 겪게 하고, 우리가 떠났던 인연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을 겪었을 것입니다. 무라카미는 이에 상실의 목적 또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모든 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니까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인물들은 마치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까지 늘 냉담함을 유지합니다.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게 되어있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것을 견뎌내는 것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상실을 겪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그것이 “일어났어야만 했다”라는 사실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덴마크어 번역작업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추가로 추천합니다. 번역이 단순 언어의 치환이 아닌,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작업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구매/대여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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