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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이번 선정 도서는 "먼저 온 미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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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이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 문명을 떠받친 건 모호함이었다. 바둑이든, 소설 창착이든 인간 활동은 탁월함이나 기세, 가치, 낭만, 인간다움 등 우리가 똑부러지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개념에 기대 이루어졌다. 그게 뭔지 잘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떤 뜻이라는 것 정도는 공유했고, 오히려 이런 모호 함 덕에 끝없는 창조나 변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단 언어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암묵지 역 시 근본적으로는 매뉴얼화할 수 없는, 몸으로 굴러야 체득할 수 있는, 하지만 모두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았던 지식이 었으니까.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모호함의 영역을 크게 줄였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바둑기사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죽이고 모 두 천편일률적으로 바둑을 두게 만들었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알파고 이전에도 다들 몇몇 거장의 기보를 따라해 저 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왔다. 오히려 알파고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는 모든 게 수치화되었다는 데 있다. 기사가 두는 한 수 한 수마다 이길 확률이 몇 프로로 딱 찍혀 나오니 바둑은 수치 게임이 되었고, 바둑 중계는 심하게 말해 경마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게 인간의 것이 아닐 뿐. 그렇기에 기사들은 AI와 바둑을 두며 초반 포석을 외우다시피 한다. AI가 신의 자리에 오르며 역설적으로 기사들 사이의 격차는 줄었고, 바둑은 민주화되었다. 이는 바둑이라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뛰어난 천재들의 예술이 아니라, 지독한 공부벌레들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 것이다. 이는 AI에 의해 바둑이 기대고 있던 모호함의 영역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크게 줄어들었 기에 발생한 결과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AI가 바둑을 '해킹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AI는 모호함을 잠식한다.

문제는 인간 문명이 지금껏 모호함에 너무나 많이 의존해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AI 의 발전은 인간의 존립 기반을 흔든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텅 비어있다는, 모두가 알지만 쉬쉬해온 진실을 폭로 한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올린 엄청나게 높은 젠가블럭이 있는데, 그 첫 단에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부분 발췌: 유찬근 (2025.07.12), "모호함의 소멸과 인간의 선택 <먼저 온 미래>", 원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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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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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날짜: 11/03/2025 (월)

모임시간: 8:00 - 10:00PM EST

모임장소: Zoom Meeting


+ 참석을 원하는 분들은 오픈톡에서 RSVP를 부탁드립니다.


+ 온라인모임입니다. 당일 오전에 카카오톡을 통해 개인별로 초대장이 발송되니, 운영자 "재호"와 1:1 대화기록이 없는 분들은, DMV북클럽 오픈챗방에서 아이디 "재호"를 찾아 1:1 Open Chat을 통해 Zoom 링크를 요청해주세요.


+ 자유롭게 대화하는 편안한 형태의 모임입니다. 반대와 찬성을 가르는 논제식 토론이 아니라 소감과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열린분들과 책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부담없이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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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천 편의 장편을 쓰는 AI가 나타난다면 - 장강명 강연


장강명: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 이후의 바둑계를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3~4개월 정도 바둑계를 취재했다. 바둑 기사 분들 30명과 바둑학과 교수님과 바둑 방송 경영자 등의 바둑 전문가 6명, 총 36명을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으로 책을 썼다.


이제는 바둑 기사들이 AI에게 한수 배운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한분은 알파고 사건으로 바둑계의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바둑계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고, 바둑계와 출판계, 문학계를 왔다 갔다 하며, 그러한 변화가 바둑이 아닌 다른 영역에도 찾아올 것임을 강조한 르포이다.


요조: AI가 점점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는 자신의 ‘고생’을 어필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이 책을 쓰느라 이렇게 많이 고생했다. 이런 인간다움으로 승부하게 되지 않을까.


장강명: 우리가 반 고흐의 작품을 볼 때 그의 비극적인 인생을 떠올리듯이, 결국은 그런 고통을 어필하는 게 유효한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한편으론, 콘텐츠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 스토리를 파는 게 자기 자신을 팔수밖에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달리 말해 자기 자신을 파는 걸 보곤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책 결론은 조금 뜬금없다. AI를 포함해서 우리가 기술을 통제하자는 이야기다. AI가 과연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인지를 판단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1세기에 이런 소리를 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해오던 작업이다.


요조 : 지금까지 AI가 쓰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눴는데 그만큼이나 읽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I는 창작도 하지만, 요약과 정리도 해주지 않나. 소설가들이 AI와 차별화된 지점을 찾아내려 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조금 독립적으로 문학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트레이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장강명 :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잘 될 것인가에 대해선 좀 부정적인 의견이다. 여기서 우리가 꼼꼼하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아무리 다짐한들,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편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아무리 시네마의 장점을 호소해도 결국 시네마의 시장은 OTT에게 밀리지 않았는가.


요조 : 반박하자면, 작가님도 이 책의 후반부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언급하며, 『1984』 덕분에 인류가 그나마 덜 망가졌다고 언급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1984』를 통해서 절망적인 미래를 경험했기에 그런 위기가 왔을 때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장강명 : 그렇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센티브에 반응하지만, 예외적으로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할 때가 있는데, 그 힘은 두려움인 것 같다. 조지 오웰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했던 일을 한 셈이다.


<관객들과 Q&A>


Q1. AI의 발전으로, 작가는 지식인형 작가나 인플루언서형 작가로 양극화되지 않을까 싶다.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지식인형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작가와는 병행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엔 작가의 창작활동은 부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장강명 : 예리한 질문이다. 이미 문학계에도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고, 바둑계에는 이미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어차피 AI가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시대니까, 바둑을 얼마나 잘 두느냐 이상으로 바둑기사인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있었던 일로, 한 영화가 굉장히 안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거기에 출연한 젊은 배우도 나서서 영화가 맘에 안 든다고 말하고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자기 탓을 했거나 침묵했을 거다. 배우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영화에 소속된 배우로서의 자의식보다 인플루언서로서의 자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문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주 수입이 강연 수입인데, 가끔 책을 내줘야 이 강연 수입이 유지된다. 강연을 위해 책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작가란 직업에 대한 변질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무슨 준비를 하느냐 묻는다면, 난 그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욕심을 내려놓았다. AI와 협업하는 법을 배워서 AI를 활용한 문학 공장을 만들고 그러진 않을 것 같다.


나는 1970년대 생이다. AI 세대도 아니고, 하다못해 소셜미디어 세대도 아니다. 그냥 1970년대 생으로서의 스타일을 고수하다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맨날 만드는 영화들처럼 말이다.


Q2. 넷플릭스가 언어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우리나라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소설도 번역만 잘 되면 굉장히 강하게 퍼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AI를 활용한 문학 번역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을 것 같다.


장강명 : 번역가 분들 생각하면 좀 조심스러워지는데, 번역에 있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커스터마이징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원저자가 누군지 모르는 유튜브 영상 같은 것도 많이 보게 된다. 그렇기에 한국 책이 외국 독자한테 알려지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많이들 하지만, 나는 그 역시 기묘한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원저자가 누군지 모르는 유투브 영상을 볼 때처럼, 책에서 재밌는 특정 대목만 잘라져서 유통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폴란드나 가나의 소설들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더라도, 결국엔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리란 생각도 있다. AI의 발전이 세계문학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평평한 시장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는 좀 낙관적이라 생각한다.


Q3. 오늘 말씀하신 부분 중에 공포의 발견술을 인상 깊게 들었는데, 앞으로 차기작에 공포의 발견술을 활용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쓸 생각이 있는지, 차기작에 대한 질문까지 겸해서 질문하고 싶다.


장강명 : 그렇다. 고통의 발견을 내 창작 방법론으로 할 생각이다. 사실 이미 그런 작업을 시작했고, ‘STS SF’(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약자로, 과학기술과 사회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형태의 SF. - 편집 주)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미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이라는 소설집이 나왔고, 앞으로는 그런 작업을 해외 여러 작가와 같이 하기로 했다. 이걸 2년 반마다 진행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는데, 첫 소설집이 안 팔리면 이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전에 월급사실주의 동인도 만들어서 그 책이 나오고 있는데, 다행히 이건 본전 넘게 팔리고 있어서 내년에도 나온다. 별개로 나는 노동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산자들> 두 번째 소설집을 내려고 한다. 또 올해 8월에 짧은 소설책 하나가 나올 것 같다.


부분발췌: 구천이 (2025.06.22), "매일 수천 편의 장편을 쓰는 AI가 나타난다면 - 장강명 강연", 원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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