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 DMV Bookclub
- Nov 7, 2025
- 4 min read
Updated: Nov 10, 2025
이번 선정 도서는 "자기 앞의 생" 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짧다. 아이의 시선에서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던 글,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눈동자에서 세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글이었다. 삶을 비관하고 자조하 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모모(모하메드)와 같은 꼬마에게만 가능한 것일까.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감정그 것이 애정이든 불편함이든 무심함이든ᅳ을 안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은 모모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담백해야 하고 간결해야 한다. 삶을 얻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삶 자체가 부정(否定)당할 뻔했던 소년이 삶이라는 만화경을 향해 가슴 펴고 마주하는 모습, 그 천진하고 개구진 모습에서 마음이 누그러지 는 글이었다.
부분 발췌: Journal of Quixote (2020.05.03), "자기 앞의 생", 원본링크
"나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다 엄마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 복통과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 했다. 길 건너에 풍선을 들고 서 있던 어떤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배만 아팠다 하면 엄마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가 아파도 소용이 없었고, 발작을 일으켜도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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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The Life Before Us
Novel by Emile Ajar (Romain 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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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날짜: 12/01/2025 (월)
모임시간: 8:00 - 10:00PM EST
모임장소: Zoom Meeting
+ 참석을 원하는 분들은 오픈톡에서 RSVP를 부탁드립니다.
+ 온라인모임입니다. 당일 오전에 카카오톡을 통해 개인별로 초대장이 발송되니, 운영자 "재호"와 1:1 대화기록이 없는 분들은, DMV북클럽 오픈챗방에서 아이디 "재호"를 찾아 1:1 Open Chat을 통해 Zoom 링크를 요청해주세요.
+ 자유롭게 대화하는 편안한 형태의 모임입니다. 반대와 찬성을 가르는 논제식 토론이 아니라 소감과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열린분들과 책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부담없이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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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자신이 충분히 어려본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14살 소년이 하는 말 치고 서글픕니다. 모모는 자신이 10살인 줄 알고 있었다가 어느 계기로 자신이 사실은 14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 아이지만 어른스러운 모모에게 마음을 상당 부분 의지하게 되었고, 이 모모가 자라서 곁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로자 아줌마에게 15살이라는 나이의 의미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내야 하는 나이였습니다. 모모를 잃기 싫어서 나이까지 속인 로자 아줌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버림받는 것에 익숙한 듯 행동하고, 상관없다는 듯 말하지만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줄 어른의 따뜻한 품을 갈구하는 아이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부분발췌: iinnffoo (2020.12.24),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독서노트", 원본링크
모모는 본인이 생각치 않은, 상상치 않은 상황에서 따뜻한 관심(사랑)이 주어질 때 희망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때에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희망이라는 걸 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물 론 현재도 그 비전은 유효하나 삶에서 꿋꿋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이 버거울 따름이다. 희망은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 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은 그냥,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살아가게 하고, 꿈꾸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받게 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이 칠 층짜리 엘베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 본인의 입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진 않으나 본인들은 모르지만 적어도 서로가 희망의 각 요소들이 되고 있다. 그래서 도움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세상에서 큰 비중 없이, 아니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서 로가 있어서 생을 이어갈 수 있는 바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모든 걸 갖춘 것 같으나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는) 지금과 비교하니 조금은 무거워진다. 더군다나 모모는 가끔 상상 속에서 인물이나 동물을 등장시키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상상 속에 원하는 대상을 불러내어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정리하는 모모다.
서로가 있어서 삶을 지탱하는 이들은 생이 사그라드는 것도 함께 한다. 가장 두려울 때 평안을 찾기 위해 로자 아줌마가 가는 지하의 유태인 둥 지에서 죽음이 두려운 아줌마의 시간을 함께 하고 죽음 이후의 3주의 시간도 함께 해준다. 그 두려움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보내는 것이 애처 롭게 느껴지기도 할 무렵, 다른 희망을 소개한 나딘 아줌마에게로 연결이 된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이지만, 아마 그곳에서 사랑을 맛보며 살아갈 모모를 떠올리니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마지막 챕에서 이야기하듯,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살 수 있다. 아마도 사랑과 사람, 삶은 이어지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사랑없이 살 수는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보다. 이것의 결핍이 두려워서 죽은 로자 아줌마 옆에 있 었던 것이 아닐까.
주변을 돌아보면 사랑이 가져다주는 희망이 없이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보인다. 아이들만 보아도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 은 관심, 사랑이다. 그것이 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몰차게 거절할 때도 있고, 봐주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응원 하고 듬뿍 관심을 줄 때 아이들은 변했다. 물론 회기 능력이 뛰어나서 금방 돌아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창조주는 각자 앞에 놓여있는 삶을 살아가기 버거운 날들도 있지만 그걸 지탱하는 주변인이 있어서 끝까지 살아가도록 하셨다. 아무도 없는 것 과 같을 때 무너진다. 이 무너짐은 처절하게 다가온다. 생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내게 주어진 작은 자들이 삶의 끝자락에 있을 때, 아무도 생각나지 않을 때, 이들에게 한낱 희망이 되는 존재여야겠다. 그래서 삶을 놓지 않도록 해야겠다. 바보라서 그 호소를 못듣고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없기를,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따뜻한 자로 남길!
부분발췌: 사랑스러운_ (2019.05.18),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원본링크
내 앞에 놓인 삶, 여생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를 직역해 지은 모호한 제목 자기 앞의 생'은 신비로운 안개처럼 작품을 감싸고 있다. 이 소설은 전성기의 영광을 뒤로한 노년의 작가 로맹 가리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단순한 필 명이 아니라 오촌 조카인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 역으로 ‘캐스팅’해서 대중 앞에 내세웠다). 늙은 로맹 가리가 재능 있는 오촌 조카 에 밀 아자르를 질투하고 표절한다고 수군거린 문단의 명사들이나, 완전히 빛바랜 로맹 가리와 눈부신 에밀 아자르를 신나게 비교해 댔던 평론 가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든 드라마틱한 반전은 작가가 권총 자살을 한 지 6개월 후 소책자 형식의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만하면 프랑스 현대문학사의 가장 좋은 자리에 올려놓을 만한 로맨틱하면서도 위트 있는 장엄한 비극이다.
자기 앞의 생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모모와 그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는 마치 로맹 가리처럼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의 삶을 가상의 이야기 속에 집어넣고 아무렇지 않게 설정을 바꾼다. 무슬림 모모는 유태인 모세가 되기도 하고, 열 살 꼬마였다가 한순간에 열네 살 청소년이 되어 버린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뻔한 표현이 나름 정확하기는 한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또 새삼스럽다. 자기 앞의 생이 발간된 1975년부터 로맹 가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80년까지 5년 사이에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작가' 로맹 가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 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원고지 위에 펜으로 창작을 하듯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한 것이다.
모모는 사랑해서, 미워해서, 괴로워서, 견디기 위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속인다. 아이가 만든 거짓말을 달리 말하면 '이야기'가 된다. 카펫을 짜는 늙은 무슬림 노인과 인정 많은 유태인 의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도망칠 구석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아이를 토닥이며 너는 시인이 될 거라고도 하고,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가 될 거라고도 몇 번이고 말한다. 모모가 정말로 위대한 작가가 되어서 자 기 앞의 생이라는 자전적인 소설을 남긴 것이면 좋았을 것이다.
부분발췌: 김영주 (2019.04.05), "<자기 앞의 생>,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No.187]", 원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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